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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뜨렌비팜 정현석 대표
그날 햇살은 다행히 뜨겁지 않았어요. 새파란 작물 밭을 큰 날개처럼 펼치고서 시원하게 뻗은 농로가 평화롭게 햇살을 받고 있었죠.
울퉁불퉁한 길 위로 덜거덕덜거덕 차가 기분 좋게 흔들거립니다. 임정화 주무관(평생학습센터팀 웹진 담당자)과 기자는 얼마 만에 보는 흙길인지 모른다며 낭만적인 감상을 나눴습니다. 아파트를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시야가, 그리고 마음이 탁 트이는 싱그러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고양특례시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며 맞장구를 치다 보니 어느새 ‘뜨렌비팜’ 앞입니다.
뜰에 내리는 단비로 다시 움트고 일어나는 곳, ‘뜨렌비팜’
임은정(사부작사부작 정담 기자, 이하 임) : 안녕하셨어요? SNS를 통해서 그간의 다양한 활동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소식을 접하다 보니 ‘정현석 대표님’ 하면 이제 ‘커피농장’, ‘열대작물’, ‘도시농부’라는 단어로 직결돼요.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 같습니다. 먼저, ‘뜨렌비팜’의 뜻이 뭘까요?
정현석(뜨렌비팜 대표, 이하 정) : 뜨렌비팜은 소리 나는 그대로 ‘뜰엔 비’를 따서 지은 말입니다. 뜰에 내리는 생명수 같은 단비를 뜻하는 순수 한국말입니다. 땅을 적시는 비가 될 수도 있고요. 소외계층에게도 생명수 같은 단비 역할을 한다면 세상에 움츠렸던, 보이지 않았던 많은 새 생명들이 움트고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담았습니다.
임 : 그렇게 소외된 곳까지 시선을 보내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청년 정현석부터 시작해 볼까요?
정 : 90년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금융, 휴양, 레저 등을 아우르는 분야였어요. 컨설팅, 여행 기획과 같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했었죠. 전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전부터 워라밸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했어요. 언젠가 건국대 김무남 교수님이 쓰신 『초원으로 가는 길』이란 책을 읽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낙농업 입문서였던 겁니다. 그 책을 읽고서 낙농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고향이었던 정발산에서 젖소를 키우고 사는 게 꿈이 되었죠. 그러다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고향도, 꿈도 멀어졌고요. 우연한 기회에 ‘클라인카르텐’이라는 독일의 도시 농업 사례를 알게 되고 전원적 삶에 대한 가능성을 실현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자립형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립형 생활공동체’라는 단어가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엔 아주 생소한 단어였어요. 지속가능한 자립형 생활공동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적인 고민을 92년도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구체적인 실천의 일환으로 새로운 분야인 ‘사회복지’ 공부를 했어요.
임 : 목장을 꿈꾸던 청년이 자립형 생활공동체를 꿈꾸게 되고 그러다 사회복지에 발을 디디게 되었군요.
정 : 처음 만난 사회복지 분야는 내가 알던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청소년 쉼터, 지역 아동센터 등 소외계층의 삶을 자세히 만나게 되면서 가치관과 지향점이 바뀌고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세심히 들여다보니 양질의 교육과 차별 없는 기회 제공이었어요. 그들이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으려면 능력이 필요했고,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단 걸 절감했죠.
임 : 단순히 사회복지에 대한 공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를 일상 안에 들여놓은 셈이군요.
정 : 내 숙제가 아니었는데 왜 내 숙제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을 직접 만나고 그 삶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방법을 모색하다 ‘사회적기업 아카데미’를 알게 되었어요. 그 아카데미에서 그들을 위한 콘텐츠로 커피 농사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죠. 우연히 ‘커피나무’를 알게 되었는데, 강릉축제가 생긴 시점에서 커피나무를 접하고 보니 사업성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임 : 그 콘텐츠라는 것이 소외계층이 더 이상 소외당하지 않을 직장, 기술 등을 제공하는 목적이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사업으로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는 말씀이군요.
정 : 그렇습니다. 국내에 커피 재배하는 곳이 없었지요. 우연한 기회에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의 센터장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외국인 이주자들의 삶을 알게 되었습니다. 커피가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 셈이죠. 그러다 그들과의 매개가 되는 것이 커피와 열대작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야가 한층 넓어졌어요. 공정 무역에 참여하고 나아가 커피 농장과 열대작물을 하게 된 결정적 상황이기도 했죠.
재밌잖아요. 그래서 힘들어도 힘든지 몰라요.
정 : 2012년도에 파주에서 첫 농사를 짓기 시작하다 2014년에 다시 고양시로 들어와서 농사를 이어갔죠. 제겐 2016년도가 본격적인 농업 활동 원년의 해라고 볼 수 있죠. 그해 평생학습 카페도 운영하게 되었죠. 나 혼자 농사짓기에 바빴던 삶에서 고개를 들고 외부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게 된 시점이죠. 당시에는 평생학습카페가 쉽지만은 않았던 경험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성장과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기도 했죠. 학습정원사가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 타지에서도 많이 관심을 가지고 와 주셨고요. 외적 활동 분야가 넓어지고 소위 인맥이 확장되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임 : 이곳 대화동에 본격적인 농장을 시작하기 전에 지역커뮤니티센터 ‘휴’라는 공간을 먼저 만드신 걸로 아는데요. 공간을 먼저 만드신 이유가 따로 있으신지요?
정 : 농사짓는 장소라는 특성과는 무관하게 오다가다 누구든 쓱 들어와 차 한 잔 마시고 이야기 나누고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스테이션(Station)이죠.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요. 마실 오듯 들릴 수 있는 공간이죠. 또 커피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고요.
임 : 커피농장을 하면서 이주노동자들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 오고 있는데요.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떠셨어요?
정 : 공정무역 현장에 가 보기도 했고 커피를 통해 알게 된 이주노동자들과의 소통에서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어요. 커피와 열대작물이 우리를 잇는 매개이긴 했지만 지속적 관계의 발전은 그 이상의 소통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들 가족과 함께 서로의 나라를 배워 가고 친해지는 과정이 있었거든요. 네팔 커피 산지에서 제가 커피 농사 교육을 하고 오기도 했죠.
임 : 끊임없이 그들과의 소통 안에서 배움이라는 것을 제공하고 있던데, 주로 어떤 내용인지요?
정 :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정서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어요. 지원사업을 받아서 한국 사람들과 소통하고 인식의 벽을 허무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죠. 식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는 프로그램입니다. 식문화의 다양성과 놀이문화의 다양성을 함께 체험하게 하면서 서로 알아가는 겁니다. 다른 나라의 놀이문화를 알아가고 한국의 놀이문화를 알게 하자는 거죠. 아이들이 부모 나라의 놀이문화를 알게 되는 경험이 되기도 하고요.
임 : 무엇이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하게 하는지요?
정 : 재밌잖아요. 서로 알아가는 것도 재밌고, 또 서로 믿어가고 친해 가는 과정도 즐겁잖아요. 그래서 힘들어도 힘든지 몰라요.
사람 때문에 힘들었지만 결국은 사람 때문에 다시 힘을 얻죠.
임 : ‘㈜사탕수수’라는 사업체를 만드셨는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요?
정 : ‘사탕수수’라는 이름은 열대작물을 대표하는 작물이라 선택했어요. 2018년도에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두레’ 사업에 선정되어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관광두레 사업은 3차년도에는 법인화를 하고 운영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어요. 2020년도가 법인화를 해야 하는 시점이었고, 지역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농산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법인체 ‘㈜사탕수수’를 만들게 되었죠. 여기서는 농업 외 모든 활동을 담당합니다. 교육, 판매, 관광 등 대외적 활동을 하죠. 그중 대표적인 것이 소외계층을 위한 돌봄, 교육, 고용서비스입니다. 집 밖 청소년, 느린 학습자, 다문화, 귀농 희망자 등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학습과 체험을 제공하고 있어요. 특히 후기 청소년(18~24세)를 대상으로 자신의 적성과 흥미, 기술, 직업 등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제공하고 있어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 돈과 같은 재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회는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배움을 통해서 스스로 길을 만들 수 있는 기회 말이에요. 쉐프가 되겠다는 친구, 판매가 적성에 맞는다는 친구, 농사가 즐겁다는 친구, 각각 다양한 진로를 찾아서 기술을 익히고 경험을 쌓죠. 로컬 푸드를 기본으로 판매하고 가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지역에서 원천을 찾고, 지역 안에서 성장하고 지역에서 어우러져 살게 되는 거죠.
임 :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요?
정 : 그렇게 힘든 건 없었어요, 다행히. 그러다 대인기피증이 생길 만큼 아픈 경험들은 있었죠. 사람 때문에 힘들었지만 결국은 사람 때문에 다시 힘을 얻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뭐든 하고 싶을 때 하세요!
임 :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정 : 실제 귀농하신 분인데 사업을 저보다 더 잘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고 말한 느린 학습자도 기억에 남아요. 각자 배움 끝에 변화와 성장이 다 있었어요. 그게 제 에너지 원천이죠.
임 : 대표님, 지금의 꿈은 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정 : 여전히 ‘자립형 생활공동체’예요. 이젠 가능하지 않을까요?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점점 꿈에 가까워지고 있는 기분입니다. 기대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씩 그런 분들이 모여드는 것 같아요.
임 : 대표님에게 평생학습이란?
정 : 늘 청춘 같은 삶을 사는 비결이죠. 청춘같이 살게 해 줘요.
임 : 배움 안에서 만난 그들에게 평생학습이란 뭘까요?
정 :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 아닐까요? ‘행복’이란 선물을 주고받게 만드는 고리 말이죠.
임 : 청년 정현석의 삶에서 지금까지의 여정 안에는 사람과 배움이 핵심인 것 같군요. 함께 만난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
정 : ‘하고 싶을 때 하라!’입니다. 뭐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하세요. 고양시에는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아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뭐든 하고 싶을 때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수년을 알고 지낸 ‘뜨렌비팜’ 정현석 대표님의 나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다고 새삼 알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지요. 그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배움, 나이를 잊게 하는 배움이 샘솟는 우물을 가슴에 지닌 사람입니다. 우물은 나이가 중요하지 않잖아요. 그저 메마르지 않는 샘이면 족하지요.
누구나 마르지 않는 배움의 우물 하나씩 가슴에 파고 산다면, 숫자에 불과한 나이쯤은 잊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물이 즐비한 도로를 지나쳤습니다. 평소에 자주 눈에 띄던 ‘보톡스’ 간판이 오늘따라 부질없이 느껴집니다.
(글) 임은정 l 사부작 사부작 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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